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4 FIFA 월드컵 미국/팀별 리뷰 (문단 편집) ==== 대회 이후 ==== 당시의 폭염이 독일전 때의 분전의 열쇠로 꼽힌다. [[1994년]]의 [[여름]]은 전 세계적으로 40도를 넘나드는 엄청난 [[폭염]]을 기록했었고[* 한국에서도 [[2012년]]까지 그런 폭염이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자. 다만, [[북미]]와 [[유럽]]의 1994년 여름은 평년보다 좀 덥기는 했어도 [[대한민국]], [[중국]], [[일본]]처럼 2018년 현재까지도 폭염 기록 하면 안 끼는 곳이 없을 정도의 폭염 역사의 아이콘이 된 어마무시한 수준까진 아니었다. 자세한 건 [[폭염]] 문서 참고.], 미국의 폭염은 습기가 없는 유럽의 여름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므로[* 얼핏 보면 어차피 같은 여름인데 뭐가 다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습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습기가 없는 여름을 다른 상황으로 바꿔보자면, 한겨울 방안에 [[난로]]를 세게 틀어놓고 있는 상황인데 이 경우 땀이 나긴 해도 상당히 건조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상으로 땀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습기가 있는 한국의 여름을 생각해보자.][* 더구나 경기가 벌어지는 현장은 가장 폭염이 심했던 [[텍사스]] 주 [[댈러스-포트워스|댈러스]] 커튼 볼 스타디움이었으니...][* 참고로 한국은 스페인전도 여기서 치렀고, 볼리비아전만 유일하게 [[보스턴]] 근처 폭스보로에서 치렀다. 독일은 한국전을 제외한 2경기를 모두 [[시카고]]의 솔저 필드에서 치렀다.] 무엇보다 [[가을]]에 리그를 시작해 [[봄]]에 끝나는 유럽 리그와 달리, 봄에 시작해 가을에 리그가 끝나는 [[K리그]]의 사정을 감안해 보면 습도 높은 무더운 날씨의 경기에 대한민국 선수들이 더 익숙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유럽 팀은 항상 하던 것처럼 뛰었는데, 후반 초중반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특히 노장들로 구성된 독일의 경우는 그게 말할 것도 없었다고... 반면, 미국과 비슷한 기후에 상대적으로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었던 한국 선수들은 폭염에 잘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반전과 비슷한 플레이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이 더위에 지칠대로 지친 독일 선수들에게는 맹렬한 플레이로 다가왔을 것이다. 게다가 당해 1월에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갔었는데, 폭염으로 인한 '''산소 부족을 대비해서 마스크를 쓰고 훈련을 했다고 한다'''. 지금 보면 주먹구구식 훈련으로 보이지만, 이게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고... 사실 이 훈련은 [[1983년 FIFA U-20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오를 때 실시한 훈련이다[* 사실 2002년 이전까지만 해도 보통 '4강 신화'라고 하면 이 성과를 지칭했으나, 이후 2002년의 엄청난 업적에 밀렸다.]. 당시 감독인 [[박종환]]은 고지대인 [[멕시코]]는 산소가 부족한 곳이므로 체력을 보완해야 한다고 마스크를 쓰고 훈련을 했다. 외신에서도 깜짝 4강에 오른 한국을 주목하며 이런 훈련을 신기한 듯 관심을 가졌었다. 어떻게 보면 이미 검증된 훈련이었던 것. 여러모로 볼리비아전이 매우 아쉬웠으나, 대한민국 월드컵 사상 남미팀에 첫 승점을 획득했다.[* 그러나 볼리비아 역시 만만한 팀은 아니었던 것이, 아무리 홈깡패라고는 하지만 지역예선에서 '''브라질에 2:0승, 우루과이에 3:1 승리'''하며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남미예선 3위로 94월드컵 24강 본선에 올라온 팀이었다. [[도하의 기적]]으로 겨우 24강 본선에 진출했던 한국이라 외신에서는 볼리비아가 한국을 이기는 것을 당연시하는 설레발 분위기였고, '''그 점수 차이가 몇 점일 것인가'''에 더 관심을 보였다.] 2차전에서 단 1골만 넣어 승리했다면, 한국은 조 3위 상위 4개팀에 주어지는 16강 티켓 경쟁에서 3위로 합류가 가능했다. 같은 1승 1무 1패인 미국(골득실 0, 3득점)과, [[죽음의 조/축구|죽음의 조]]에서 고생한 이탈리아(골득실 0, 2득점)와 비교해서 한국은 볼리비아전 1:0 승리를 가정하면 골득실 0, 5득점으로 우위에 서기 때문.[* 실현되었다면 '''이 대회 준우승팀 이탈리아는 오히려 24강 조별리그에서 광탈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한국이 조금만 더 선전했으면 대회의 판도가 뿌리채 뒤바뀔 수 있었던 것.] 당시 [[황선홍]], [[김주성(축구)|김주성]], [[홍명보]], [[고정운]], [[하석주]], [[서정원]], [[노정윤]] 등 지금도 한국 축구의 [[레전드]]로 꼽히는 선수들이 모두 현역이었고, 실제 당시 경기를 봐도 스페인, 독일을 맞아서도 비등한 게임을 할 정도로 전력이 좋았다. 따지고 보면 황선홍이 그렇게 많은 기회를 놓친 건 '''그만큼 많은 기회를 만든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 비록 조 3등끼리의 경합에서 밀려서 탈락했지만[* 조 3위 중 아르헨티나 등은 2승 1패를 달성하고 승점을 많이 챙겨서 조 3위로도 16강에 진출했다.] 이때는 애초에 한국은 약체로 분류되었고, [[도하의 기적]]으로 겨우 본선에 오르는 등 '역대 최약체 대표팀'으로 혹평을 받기도 했음에도 경기력도 훌륭했고 최초로 '''승점 2점'''을 획득하여 '''94 월드컵 20위'''[* 86 월드컵에서도 20위를 기록.]로 충분히 선전했다 볼 수 있었다. 애당초 21세기의 한국축구를 기준으로 8~90년대를 보는건 무리가 있다. 당시 아시아 축구와 세계축구의 격차는 지금보다 더 어마어마했다[* 8~ 90년대의 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 진출 1위팀은 아시아 플레이오프 진출팀과 경기를 했을 정도였고, 프랑스, 잉글랜드, 92유로 우승팀 덴마크는 모두 지역예선에서 탈락하여 94월드컵 24강 본선 진출 실패했다.]. 그간 한국 대표팀은 계속 붉은색 유니폼을 메인 색상으로 사용해왔으나,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94년 월드컵 지역예선의 활약이 좋지 못했던 영향인지 '''붉은색이 상대를 흥분시키고 공격성을 이끌어내서 경기력에 손해를 준다'''라는 사소한 이유와[* 실제로 심리학에서 붉은 유니폼이 다른 색상의 유니폼보다 불리한 판정을 받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는 역대 FIFA 월드컵 우승국의 유니폼 색상만 보고도 확인할 수 있는데, 실제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한 스페인의 고유 유니폼 색상은 빨간색이나, 결승전에서는 남색의 원정 유니폼을 입었었다. 빨간 유니폼을 입고 우승한 국가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가 전부다.] '''백의민족의 전통을 살리자'''라는 주장이 대두되는 바람에 이 대회에서는 홈 유니폼을 흰색, 원정 유니폼을 파란색 색상으로 바꿨다. 그런데 파란색 원정 유니폼을 입고 뛴 독일전의 활약이 강렬하였기 때문인지 한국 유니폼을 파란색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잦았고, 그 때문인지 실제로 월드컵 이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부터 메인 유니폼을 흰색 상의와 파란색 하의로 고정했었다. 물론 이는 1995년 다시 붉은색으로 돌아왔으며, 이후 [[차범근호/1998 FIFA 월드컵 프랑스/네덜란드전|다음 월드컵에서의 대참패]]로 인해 파란색 유니폼을 입는 일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2010년 남아공 월드컵]] 32강 조별리그 3차전인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흰색 상의와 파란색 하의로 구성된 원정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르기는 했다. 경기 결과는 2:2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하고, 나이지리아를 탈락시키며, 원정 첫 2라운드 16강 진출.] 여담으로 그 이후 대한민국은 차기 월드컵에선 월드컵 첫 선제골[* 하석주가 멕시코전에서 선제골을 넣었다.]을 기록했고, 이로부터 또 4년 뒤엔 [[히딩크호|이변을 낳았으며]], 이로부터 또 16년 뒤에는 [[신태용호/2018 FIFA 월드컵 러시아/독일전|정말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길이 남을 그 영광의 사건까지 만들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